ㆍ위대하게, 은밀하게
13일 오후 1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서초사옥 앞.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는 삼성 직원들을 비롯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총선 기간 청년당 당원들과 ‘출자총액 폐지,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외치며 항의의 뜻으로 앵그리버드를 이 건물들을 향해 날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삼성사옥 주변에는 청년당 당원들보다 더 많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1년여 전과는 달리 날씨가 쨍쨍한 데다 감시의 눈길이 없어 느낌은 달랐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삼성 이야기를 꺼내기에 적절한 장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자리한 이곳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경제의 심장부일지도 모른다. 호불호를 떠나 ‘삼성’은 이미 한국경제,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비중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삼성만큼 지속적으로 찬사든 비난이든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도 없다. 삼성의 경영 기법 등을 극찬하는 수백권의 책이 쏟아져 나온 반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나 <이상호 기자의 X파일> 등이 수만~수십만부씩 팔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 화려한 성공 이면에 일그러진 모습
최근 영화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삼성은 겉으로는 ‘위대하게’ 보였지만, ‘은밀하게’는 비열하거나 추한 기업이었다. 삼성그룹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한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나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 한복판에서 삼성 액정광고는 번쩍번쩍 빛난다. 겉으로 드러나는 삼성은 이처럼 화려하고 위대하다.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가의 딸들인 이부진, 이서현씨의 럭셔리 패션은 연일 화제가 된다. 이미 흠모의 대상이 되는 ‘셀러브리티’들이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가 자녀들은 2000년대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주인공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수면 위로 나타나는 삼성 또는 삼성가의 은밀한 모습은 추하거나 비열하거나 심지어 찌질하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3년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를 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보유 순재산이 41억달러(현재 환율로 약 4조5000억원)로 세계에서 316번째 부자다. 하지만 그가 이 엄청난 부를 자신의 노력이나 성취로 일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이 부회장이 가진 부의 대부분은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지분이다. 그런데 그가 막대한 재산으로 불어난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돈에 대한 세금 16억원에 불과하다. 그 돈을 밑천 삼아 그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의 주식을 엄청난 헐값에 인수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하긴 이건희 회장은 삼성특검에서 밝혀진 것만 4조5000억원의 비자금을 (그의 주장대로라면) 상속받았지만, 세금 한 푼 내지 않았으니 그에 비하면 약과인 셈인가. 어쨌든 엄청난 ‘세금짠돌이’들이다. 이 부회장이 자녀를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부정입학시킨 사례만 봐도 얼마나 추하다 못해 찌질한가.
그런 점에서 삼성서초사옥 전자동 지하1층에 있는 ‘아티제’ 삼성타운점이 삼성의 이중적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손을 떼고 있지만 아티제는 이부진씨가 사장으로 있는 호텔신라가 100% 지분을 가진 보나비가 운영하던 베이커리였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들어선 아티제 매장은 밝고 환하다.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활기차 보인다. 커피를 한 잔 시키려 했다가 찜찜해 그냥 돌아섰다. 순간 ‘찌질한 사업’에 돈을 보태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할 사업이 없나. 그것도 계열 기업들의 따스한 품 안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말이다. 애플이나 구글이 빵집이나 면세점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 않나.
하긴 이처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남 눈치 보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은 삼성가의 오랜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일제와 결탁해 삼성상회와 양조업, 토지 투자 등으로 큰돈을 번 고 이병철씨는 <호암자전>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이렇게 손쉬운 돈벌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토지 투자 사업은 순조로웠다. 식산은행의 금고가 마치 나의 금고로 착각될 정도가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나는 연수 1만석거리, 2백만 평의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도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거액의 조세를 포탈했다. 이에 1960년 4·19혁명 당시에 분노하는 민중들이 ‘부정축재자’ 이병철의 처단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그는 권력과 결탁해 계속 승승장구했다.
당시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내려 공식 통계로만 100명 이상을 학살한 당시 내무부 장관 홍진기와는 이후 사돈이 됐다. 1966년에는 그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져 나오는데 밀수 품목은 사카린, 표백제, 전화기, 수세식 변기, 욕조 등 1만여가지나 됐다. 이후에도 ‘삼성X파일’ 사건이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등을 통해 우리는 그 같은 전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 삼성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언론들
그런데도 삼성의 추한 모습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삼성 등 재벌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폭되고 있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삼성은 대체로 찬사의 대상이다. 삼성전자 등의 눈부신 실적 등의 영향이 크지만, 나는 대체로 그것이 언론 굴종의 산물이라고 본다. 1999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법 상속 문제를 참여연대가 처음 제기했을 때 당시 신문기자였던 나는 내가 쓴 관련 기사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날 나는 그 신문이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파는 거래를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문 사주의 아들은 삼성가의 둘째 딸과 결혼했다.
그 신문만이 문제인가.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이 삼성에 영혼을 팔아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다. 예를 들면, 2010년 2월 이건희 회장 발언에 대한 언론 보도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특검 수사 결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고 139일 만에 초고속 특별사면을 받았다. 오로지 회장님 한 분만을 위한 ‘원포인트 특사’였다. 그렇게 특사를 받고 풀려난 지 단 3개월. 그는 이병철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이 회장이 ‘화두를 던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게 정직이라고 가르칠 수 있나.
보통 이 정도 얘기하면 재벌가인 삼성가와 삼성그룹의 기업들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가의 행태와 무관하게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의 선전은 평가하자는 얘기인데,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삼성가와 삼성그룹이 그렇게 쉽게 분리될 수 있나.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가진, 철학자 김상봉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아무런 법적 실체도 없는 ‘회장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재벌체제 속의 기업들이 어떻게 삼성가와 분리돼 움직인다는 건지 나는 잘 상상이 안된다.
어쨌거나 삼성재벌은 이미 한국경제의 대주주다. 그래서 “그나마 삼성 때문에 먹고사는 것 아니냐”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경제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미 삼성에 매수된 언론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자 프로파간다다. 하지만 대다수가 믿어버리면 진실이 된다. 삼성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어쩌면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돈의 힘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동굴의 우상과 동굴 밖 찬란한 태양 아래 놓인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확하게 재벌독식 체제 때문에 한국의 산업생태계는 질식해 활력을 잃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구글,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학교 기숙사나 집 안의 주차장에서 시작한 벤처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벤처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좀 된다 싶은 사업이 보이면 삼성 등 재벌이 인수해버리거나 시장에 들어가서 해당 기업을 고사시켜버리거나, 특허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수백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 있다. 이 회장이 내심 하고 싶었던 말은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현실은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99% 국민을 등쳐서 자신들의 부를 불리고 있는 것에 가깝다. 삼성이 정말 순전히 자신들의 경쟁력만으로 지금과 같은 엄청난 실적을 낸다면 나는 기꺼이 박수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삼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을 싹쓸이하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 마음 편히 갈채를 보내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체제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일자리가 줄고 협력업체와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 삼성만 믿고 살아야 하는 한국경제가 불안하다
말 나온 김에 삼성이 누리는 특혜를 몇 가지만 열거해보자. 우선 환율효과.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경제위기 전 900원대 초반이었다가 경제위기 이후 1100~1200원대를 유지해왔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했다는 지난 수십년 동안 240원대이던 환율이 지속적으로 올라, 즉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수출대기업들을 도와주면서 성장했다. 수입 인플레로 소비자들은 늘 만성 물가 불안에 시달리면서 수출대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해온 셈이다. 요즘 일시적인 엔저로 ‘수출 비상’ 운운하지만 삼성전자 등 수출대기업이 누린 혜택은 엄청나다. 내가 분석해 본 결과로는 매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가운데 최소 3분의 1가량은 환율효과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뿐인가. 2012년 예산안 기준으로 16조원이 넘는 연구·개발(R&D) 투자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이 향유한다. 일부 기득권 언론들이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사실상 조세도피처를 경쟁국으로 비교하며 한국의 법인세율이 높다고 질타하지만 국내 법인세율은 일정한 내수규모를 갖춘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낮다. 특히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으로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법인세 부담을 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상대적으로 가계들이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대신 낮은 산업용 전기료 부담으로 가장 많은 보조를 받는 것도 삼성이요, 늘 담합을 주도해 거래 업체나 소비자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 가장 많은 부당이득을 취하고도 ‘리니언시’ 제도의 힘을 빌려 가장 많은 과징금 면제혜택을 받는 것도 삼성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삼성이 한국을 떠날 수 있으니 삼성을 더 잘 모시라’고 떠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우리는 삼성에 엄청나게 몰아줬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잘살게 되고 더 행복해졌나. 한국경제의 많은 자원을 삼성에 몰아주고, 삼성전자는 모바일 부문에 몰아준 결과 한국경제는 당장 경제 포트폴리오 면에서만 봐도 매우 취약해졌다. 외국자본들의 ‘작전’ 논란에도 불구하고 JP모건의 리포트 한 방으로 삼성주가가 무너지고, 한국 증시가 기진맥진하는 이유는 뭔가.
삼성사옥 앞에서 만난 한 삼성 직원은 “그래도 ‘관리의 삼성’이 충분히 잘 관리할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한국경제가 불안하다. 삼성만을 믿고 살아야 하기보다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이 튼튼해 가계가 스스로를 믿고 살 수 있는 경제를 보고 싶다. 내가 아는 삼성 직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사상 최대의 승진 잔치 이면에 사상 최대의 살육(=해고)이 진행되는 회사”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직원, 사회공동체와 공존공영하는 ‘착한 회사’가 한국의 대표 기업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삼성에도, 한국 경제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선대인 | 선대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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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의 이면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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