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없는 병원이 문을 열었다. 시립 서울의료원이 지난달 개원한 ‘환자안심병원’이다. 간호와 간병 서비스가 24시간 무료로 제공된다. 병원 측은 6개월에 걸쳐 환자, 가족들과 실험까지 마쳤다고 한다. 지난해 10월쯤 개원할 예정이었으나 처음 하는 일이라 늦어졌다. 아직 180병상 정도로 소규모다. 월 200만원가량 간병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성 질환자나 장기 요양자를 두거나 둬본 가정이라면 그 의미를 안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의미가 배가된다. 질병으로부터 가정을 구하는 일이다. 선진국형 공공의료를 향한 출발이라는 평이 무색치 않다.
서울 시정이 소리 소문 없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11월 옛 서울시 청사에 서울도서관이 개관했다. 평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인들이 몰리고, 주말에는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시민들이 북적일 만큼 명소로 뜨고 있다.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은 정착했다. 한 족벌 사학의 입학금보다 적은 액수다. 1000명 이상의 계약직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시의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돌고래 ‘제돌이’는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결혼이민자 출산 전·후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공유도시 서울’ 선언이나 뉴타운 출구 모색과 같이 숫자화할 수 없는 변화도 적지 않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후 1년4개월여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변화가 눈에 띄는 건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피부에 와 닿아서다. 무상급식 확대로 시작해 다문화가정의 출산 돌봄에 이르기까지 무릎을 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정규직 전환 외엔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거창한 일들이 아니다. 안쪽 지면에 있어도 삶을 살지게 하는 울림이 있다. 생활형 혁신이라는 얘기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난다.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구호 아래 시민 중심의 행정을 펼친 산물일 것이다. 그런 경험들은 의식의 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다. 지난 4·11 총선의 부재자투표 신청 당시 반값등록금 혜택을 누린 시립대 학생들의 참여율이 2010년 지방선거 때보다 18%나 증가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내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에 투표하면 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의 공유일 터이다.
개혁·진보 진영의 위기가 박 시장의 존재감을 키운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를 두고 다양한 풀이가 나오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대학원장의 지적에 공감한다. 그는 “(민주당은) 후보만 뛰고 당원들이 대중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 등 간절함에서 새누리당에 밀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선거운동을 광장정치에, 새누리당의 그것을 골목정치에 비유했다. 새마을운동 노래를 틀고 시골 구석구석을 누빈 새누리당 의원들과 달리 민주당은 광장에서 군중집회나 열고 ‘한 방’을 노리는 선거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져 집권 프로그램은 없이 향유하게 될 가상의 권력에만 취했던 탓일 게다. 여당이 4대 중증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이나 기초노령연금 등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는 동안 한물간 거대 담론에 매달렸다. 거대 담론이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것’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없다보니 허황된 게 문제다. 뒤늦게 ‘대중 속으로’ ‘낮은 곳으로’를 읊조리기 시작했으나 그나마 소수다. 여전히 중도 타령이고, 계파 싸움이다.
‘소셜 디자이너’로 불리길 원했던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과로사가 꿈’이라는 농을 던질 만큼 일벌레였다. ‘나눔’과 ‘기부’로 특징지워진 그의 시민운동은 새로운 영역을 적잖이 개척했다. ‘서울시장 박원순’의 모습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박 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평균 퇴근시간이 밤 9시라고 밝힌 바 있다. 그것도 시 공무원들이 쉴 수 있도록 자제한 덕분이라고 한다. 보수 인사들은 물론이고, 시민운동을 하면서 교분을 맺은 기업인들과의 두터운 친분은 그의 숨겨진 힘이다. 그러한 전력들로 인해 시민운동이나 시장 선거과정에서 ‘협찬 종결자’나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과 같은 비난을 사기도 했으나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갈망과 진정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서울시장 박원순’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인 것 같다. 국외자의 인상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그 패배 이후에도 아무런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개혁·진보 진영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큰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에 솔깃해한다.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그리고 먼 미래보다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우리’를 포기해서가 아니다. 당장 ‘나’를 추슬러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서다. ‘큰 이야기’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작은 이야기’가 절실한 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얼마 전 ‘손톱 밑의 가시’란 표현을 썼다. 적확하지는 않더라도 근처는 짚은 것이라고 본다. 박원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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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장들은 당을 이용하여 중앙정부나 대통령에게 부탁하듯 지역발전을 이뤘는데,
박원순 시장은 직접 여기저기 다니며 민생을 살피는 모습에 타지역에 살고 있지만 항상 부럽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을법한 디자인 사업은 결국 업자 배말불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한강에 요상한 건물을 띄워 모피쇼를 한들 관심있어할 시민들은 몇명이나 될련지, 기존 전통시장에 디자인을 입힌다며 옛 건물들을 철거하고 전혀 주변건물과 매치도 안되는 건물을 지으면 없던 수요가 생길까 의문이다..
대선때 새누리당이 보여준 복지포퍼먼스에 대해 진심성 없는 포퓰리즘 공약이다고 말하던 야당에게 그런 비판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처럼 피부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으면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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